미아 With Humility

22에 방황은 필수라고 여기고 안일하게 아무 생각 없이 방황의 길에 올랐었는데 지금의 방황은 뭔가 엄청 죄책감 들고 뒤쳐지는 기분의 길잃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22의 방황은 육체적으로 떠돌았으나 지금 나는 집에서 방황하고 있다. 나의 육체는 그 어느때보다도 착실하고 성실한 삶을 살고 있으나, 나의 정신은 그 어떤 시간보다 안정되어 있지 않다.

 

우울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 때와 비슷한 패턴의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뭔가 오묘하게 다르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할 일을 하는 그 와중에 나조차도 느끼기 힘든 미묘한 detachment가 있다.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만 나의 마음만은 그 열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도대체 어디에 반항한단 말인가?) 뭐 세상을 바꾸고 싶은 야심찬 마음도 물론 없다. 내가 끼어있는 틀에 순응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충만하고,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싶기도 했는데... 뭔가 이것도 오묘하게 안된다? 우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기쁘지도 않다. 그냥 중간의 어느쯤에서 하루 하루를 죽어가고 있는 기분이긴 한데, 열정도 꿈도 어딘가에 있는 것 같긴 한데 딱히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내 앞에 닥친 일을 잘하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긴 한데, 이건 차라리 20초반에 했어야 하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눈을 껌벅이고 있다. 초롱초롱 빛내며 깜박이는게 아니라 꿈벅꿈벅 눈 마르지 말라고 겨우 열고 닫는다. 아...이런게 내가 꿈꾸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고난과 역경이 가득한 삶보다는 나는 이렇게 미지근하고 별볼일 없는 nobody의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고난을 겪으니 나는 너무 힘들더라. 그걸 이겨낼 그릇은 아닌 것 같더라. 알고보니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의 시작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 본다.

물론 나는 지금 3300자 정도의 에세이를 1000자씩 쓰겠다는 그런 야심찬 계획은 말아먹고 한 문제만 1800자 쓰는 기염을 토하고 나머지 두 개를 거의 발로 썼는데 -_- editing을 10번은 해야 마음이 편한 내가 2번도 겨우 할까말까 한 체로, 엄청나게 무서운 교수님한테 낼 생각하니까 막 떨려 막 떨려!!!! 그리고 3천자를 proofreading하는건 정말 귀찮아서 죽을 것 같다. 그런데 안할 수도 없는게 나의 first draft는 정말 아이디어 겨우 써놓은 오그라드는 유치원생 수준... 아아 정말 art of editing 가르쳐주신 그 수업 정말 좋았는데 애들이 못해서 이제 안 가르치시겠다고 함.

사실 그 announcement가 있었을 때 소름이 돋았다. 나도 바로 그 날 초중딩에게 너네 공부 안해서 안 가르쳐!!!라고 공포하고 온 이후였기 때문. 그리고 난 교수님의 그 공지를 보고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학생의 입장에 서보니, (상상한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보니) 정말 기분이 더러웠기 때문이다 -_-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배우기를 열망했던 한 학생의 입장으로서 기분이 더럽기도 했지만 아쉽고 쓸쓸하고 슬프고 하여튼 온갖 mixed feeling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선생으로서 다시 복직함. 물론 아이들에게 이유 따위는 설명하지 않음.ㅋㅋ

아. 나의 방황하는 20 중반은 여름에도 이어질 것인가보다. 영문학개론과 같은 1학년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은근히 필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었다는 사실. 그동안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중요한 사람들 작품 한 개씩은 다 읽었네? (ㅋㅋㅋㅋ 이게 바로 나의 기쁨의 한계) 여름에 뭐하지, 생각해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집에서 방황하는 20대 중반. 이것은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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